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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dol
The Dream of Turntablist
한국의 턴테이블리스트

에디터가 ‘판돌(Pandol)’을 처음 만난 건 2010년 서울에서 열린 ‘Pioneer Korea DJ Contest 2010(이하 PKDC)’에서였다. 날카로운 눈빛과 자신감 넘치는 퍼포먼스, 낯설면서도 익숙한 개성 있는 사운드로 힙합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한 그는, 이어 아시아 각국을 대표하는 디제이들이 모여 배틀을 벌인 ‘Pioneer East Asia DJ Battle’에서도 챔피언 자리를 차지했다. 척박한 부산 로컬 씬에서의 스트리트 문화 정착에 애쓰는 기획자이자 세계 챔피언을 꿈꾸는 디제이 겸 턴테이블리스트인 판돌과의 인터뷰에는 서울에서 수많은 스트리트 문화 관련 행사를 주최·주관해 온 기획자, 장비호 이사(파운드 매거진 발행인)도 참여했다. 디제이라는 공통된 출발점을 가진 이들의 대화를 통해 한국 스트리트 문화와 디제이 문화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엿볼 수 있었다.
# 부산에서 세계 챔피언을 꿈꾸다
파운드 ― 부산의 스트리트 씬을 대표하는 인물로 꼽히고 있는데, 부산이 고향이신가요?
판돌 ― 태어난 건 대구지만, 태어나자마자 지금까지 부산에서 학교 다니며 자랐으니 부산이 제 고향이나 다름없죠.
파운드 ―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음악을 접했나요?
판돌 ― 아버지의 영향이 커요. 아버지가 4형제 중 맏형이셨는데 삼촌들이 모두 공부를 하셔서 당신은 정작 하고 싶었던 음악을 포기하셨대요. 일찌감치 돈 벌러 공장에 다니신 거죠. 그러면서 혼자 악기를 직접 사서 독학으로, 취미로 연주하셨는데, 재능이나 소질이 탁월하셨어요. 어렸을 때부터 바이올린이나 첼로, 피아노 같은 악기 소리를 들으며 자랐죠.
파운드 ― 굉장히 의외네요.
판돌 ― 어린 시절, 힙합보단 가곡이나 클래식 음악을 더 많이 들었어요. 그런 성향이 갑자기 변하게 된 계기는 집 앞 레코드 샵을 지나가다 우연히 발견한 비디오테이프 때문이었죠. 1996년도 ‘World DJ Champion Ship’ 영상이 담긴 테이프였어요. 당시 우승자가 DJ Noize였고, 다음 해 우승자가 DJ A-Trak이었죠. 그냥 그 영상을 보면서 무작정 생각했어요. ‘나도 세계 챔피언이 되어야지….’
파운드 ― 영상을 보고 한순간에 빠져든 이유가 뭘까요?
판돌 ― 턴테이블 단 두 대만으로 음악을 만들어내는 것 자체가 너무 신기했어요. 그렇게 만들어낸 음악 자체가 저에게는 한곡이 아닌 수백, 수천 곡처럼 들리더라구요. 턴테이블 위에 손을 올려놓고, 몸으로 보여주는 퍼포먼스 자체가 저에겐 음악으로 다가온 거죠.
파운드 ― 막연하게 멋지다고 생각했던 일에 흥미를 잃게 되는 경우도 있는데, 그때부터 지금까지 쭉 꿈을 지켜온 건가요?
판돌 ― 사실 포기도 많이 했어요. 부산에선 그런 걸 하는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았으니까요. 레코드 샵 사장님을 통해 물어물어 찾아간 곳이 나이트클럽이었어요. 그런데 막상 클럽 디제이 생활을 해보니 제가 생각했던 게 아니란 생각이 들더라구요. 음악적인 부분 외에 신경 써야 할 많은 것들이 많았어요. 1996년도 당시 클럽 디제이들 대부분이 믹스된 음악을 그대로 틀면서 쇼에 비중을 두고 있었어요. 클럽에서도 그런 걸 원했고. 때마침 턴테이블로 음악을 틀던 디제이들 사이에 전국적으로 CDJ 모델이 유통되면서 디제이가 음악을 트는 방식이나 장비면에서도 큰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어요. ‘내가 생각하는 디제이가 이렇게 바뀌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제가 원하고 꿈꾸던 배틀 디제이 문화 자체가 그곳에 없다는 걸 알게 됐고, 참 건방지게, 클럽을 그만두고 나와 독학으로 턴테이블 음악을 배우기 시작했죠.
장비호 ― 당시엔 나우누리나 하이텔, 천리안 같은 PC통신 동호회를 통한 움직임도 활발했었죠.
판돌 ― 네, 맞아요. 서울에서 활동하시는 형님들, DJ Wreckx나 가리온의 움직임을 PC 통신을 통해 접했어요. 그때 부산에서 활동하던 ‘BLEX(힙합 동호회)’ 회원이었던 MC Wimpy(판돌이 소속된 부산 언더그라운드 힙합 팀 ‘두 사람’의 멤버)도 만나게 됐고.
파운드 ― 서울의 언더그라운드 힙합 씬의 동향은 온라인으로 꾸준히 접하면서도 오프라인 활동은 부산에서 계속 했네요?
판돌 ― 부산엔 소수의 친구들뿐이었죠. 좋아하는 게 비슷한 친구들과 함께 모여 공연을 하곤 했어요. 그러다 부산에서 활동하는 배틀 DJ Laggy도 만나고. 대부분의 친구들이 디제이는 오래 안 했고 프로듀서 쪽으로 방향을 돌렸어요. 서울에 올라가 활동하는 사람들도 많았고. 전 그걸 보면서도 계속 부산에 남았죠.
파운드 ― 서울로 가야겠다는 생각은 안 해봤어요?
판돌 ― 당시 제 생각엔, 이건 지금도 물론 마찬가지인데, 내 꿈이 세계 챔피언이면 지금 내가 부산에 있든, 인도에 있든, 바닷가에 있든 산에 있든, 그런 건 크게 상관없을 것 같았어요. 제가 서울에 올라간다고 해서 활동을 더 잘할 거라는 개념 자체가 아예 없었죠. ‘다들 서울로 가는데 왜 난 여기에 있지?’ 하는 생각이 가끔 들긴 했는데, 그때마다 답은 별로 안 궁금했어요. 연습하는 데에만 시간을 투자하고 정신을 쏟다보니 그런 고민들은 그냥 외면하게 되더라구요.

# 디제이의 우리말, ‘판돌’
파운드 ― 사실 많은 이들에게 배틀 디제이란 개념이 명확하게 다가오지 않아요.
판돌 ― 배틀 디제이는 퍼포먼스와 기술적인 연주력을 갖춘 턴테이블리스트(턴테이블 연주자)에요. 피아노나 바이올린 같은 악기 하나를 배워 연주한다는 것과 똑같은 개념이죠. 힙합과 관련된 뮤지션들이 주로 턴테이블리스트로 활동하기 때문에 ‘배틀 디제이는 힙합을 하는 사람’으로 생각되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에요.
장비호 ― 판돌씨가 얘기하는 배틀 디제이는 말 그대로 턴테이블의 바늘이 만들어내는 소리로 음악을 만드는 거예요. 컴퓨터 음악 장비가 발전하고 이펙터가 보편화된 지금과는 달리 한국에서 디제이 음악이 시작하던 초창기엔 비트를 하나하나 직접 만들어내야 했던 거죠.
파운드 ― 세계 챔피언을 꿈꾸는 이유는 뭐예요?
판돌 ― 처음엔 그저 어리고 잘 몰라서 막연하게 한 생각이었지만 음악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디제이로서 창작적인 부분에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내 머릿속에 떠다니는 소리들을 만들어내고 표현한 걸로 세계 최고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된 거죠. 1997년부터 ‘판돌’이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했는데, 물론 그땐 아무도 몰랐지만, (웃음) 디제이를 비하하고 비꼬는 뉘앙스의 ‘판돌’이라는 이름을 걸고 세계 챔피언이 된다면 참 멋질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파운드 ― 비트메이커로서 MC와 함께 무대에 서는 디제이에 대한 관객들의 시선은 MC에 대한 그것만 하진 않은 것 같아요.
판돌 ― 100명의 MC가 있다면 디제이는 한두 명 있을까 말까 해요. 지금도 클럽 디제이들은 많지만 MC와 함께 작업하는 비트메이커나 프로듀싱 디제이는 여전히 찾기 힘들어요. MC들을 보기 위해 모인 관객들의 입장에선 무대 위의 디제이가 스탭처럼 보이기도 하겠죠. 하지만 디제이 없이는 공연 진행 자체가 안 돼요. 디제이는 공연의 진행과 흐름을 책임지는 디렉터와도 같은 역할을 하니까요.
장비호 ― 한국 문화가 단시간 내에 성장함으로써 생긴 부작용이겠죠. 단계 단계의 발전 대신 모든 게 한꺼번에 받아들여지고 변화했으니까. 스트리트 문화 중에서도 힙합 문화 안에서는 원래 디제이가 비트를 줘야 MC가 랩을 할 수 있어요. 디제이가 비트를 바꾸면 MC들이 거기에 맞게끔 플로우를 타면서 랩을 해야 하는 거고. 그런데 지금은 대부분 미리 짜여진 각본대로 움직이니까, 디제이는 그저 MC들이 랩을 할 때 중간 중간 소리를 채워주는 악기 역할로 치부되고 마는 거죠.
판돌 ― 디제이들은 주크박스 역할밖에 못하는 상황인 거죠. 하지만 디제이와 MC의 관계를 들여다보면 전혀 그렇지 않아요. 디제이가 길에서 바이널(Vinyl)을 틀기 시작하면서 거기에 맞춰 랩을 하는 MC도 나오게 된 거고, 춤을 추는 댄서들도 나오게 된 거예요. 그러면서 스트리트 문화가 파생되고 커지게 된 거죠.
장비호 ― 비보이들은 MC가 없어도 춤을 출 수 있지만 디제이가 없으면 춤을 못 춰요. 힙합을 단순히 음악만으로 보지 않고 하나의 문화로 볼 때,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걸 따지자면 그 시작과 끝은 항상 디제이에요. 그게 디제이를 하는 이유인 거지. 물론 몇몇 사람들은 디제이가 여자한테 인기가 많다는 이유로 하고 싶어 하지만. (웃음)
파운드 ― 한국에서 프로듀싱 디제이를 찾기 힘든 이유는 뭘까요?
판돌 ― 가장 큰 이유는 현실적인 문제겠죠. 디제이로서 수입을 내면서 활동하는 게 가장 이상적인 건데 그렇게 하기가 힘든 게 현실이니까.
파운드 ― 그래서 클럽 레지던트로 활동하는 디제이들이 많아지는 게 아닐까요?
판돌 ― 사실 한국 클럽 디제이의 분위기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있긴 해요. 이건 제가 솔직하게, 거침없이, 함부로 이야기하는 건데요. (웃음) 클럽 디제이들이 자기 음악 자체에 만족을 하면서 음악을 트는 경우가 많지 않기 때문에 한국 클럽 디제잉이 발전을 못하는 것 같아요. 저도 클럽 레지던트 생활을 몇 년 해봐서 알지만, 디제이 대부분이 ‘사람들은 이런 노랠 틀어줘야 놀아’라고 생각하는 게 대부분이거든요. 저는 그런 게 싫어요. 좋은 음악을 틀면 사람들이 안 노니까, 사람들이 놀게 하는 음악을 골라서 튼다는 생각이요. 많은 디제이들이 자신만의 세트를 만드는 것을 작품 활동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요. 현실이나 상황에 맞게 어쩔 수 없이 트렌디한 음악을 튼다고 생각하면서 스스로 자신의 처지를 비하하니까요. 외국 디제이들은 똑같은 세트를 가지고 10년 넘게 플레이하기도 해요. 자신의 음악, 자신의 스타일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거죠. 그때그때 트렌드에 맞춰 레퍼토리를 바꾸는 게 아니라 자신만의 세트, 자신만의 작품을 만든다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 손끝으로 만드는 음악, 턴테이블리즘
파운드 ― 디제이가 되겠다는 결심은 가족들로부터 지지를 얻었나요?
판돌 ― 가족들은 모두 반대했죠. 어렸을 때 피아노 학원을 다닌 적이 있는데 호기심이 많고 엉뚱한 성격에 자기만의 세상에 빠져있어서 맨날 놀러 다니고 엄한 데 가있곤 했어요. 부모님은 ‘넌 음악하면 안 된다’ 하시는데, 저는 돈이 있어야 악기를 사니까 끊임없이 대치를 했죠. 그때 할머니께서 대학에 입학하는 조건으로 컴퓨터를 사주시겠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대학에 들어갔죠. 약속대로 컴퓨터 살 돈을 받아서 학교는 바로 그만 두고 용산에 올라가 턴테이블 두 대, 믹서 한 대 사가지고 집에 내려와 바로 연습을 시작했어요.
파운드 ― 컴퓨터도, 악기도 아닌 턴테이블을 사가지고 돌아온 아들을 부모님은 이해하셨을까요?
판돌 ― 제가 뭘 하려고 하는지 모르셨죠. 음악을 한다는 애가 신디사이저를 사온 것도 아니고 턴테이블을 사가지고 왔으니. 막연하게 ‘얘가 업소에서 음악 트는 디제이를 하려고 하는구나’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그게 아니라고 설득하려고 했지만 설명을 할 수 있는 롤 모델이 한국에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냥 체념했죠. 가끔씩 부모님이 크게 화를 내셨는데, 그럴수록 저는 더 턴테이블에 집중했어요. 친구들도 맨날 “턴테이블 가지고 뭐하냐, 클럽 가서 음악 트는 디제이를 해라” 했어요. 자존심이 엄청 상했어도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연습밖에 없다는 생각뿐이었어요.
파운드 ― 턴테이블로 같은 곡을 계속해서 연습하는 건가요?
판돌 ― 턴테이블은 악기와 같아요. 협연이나 독주를 위해 어떤 악기로 한곡을 계속해서 연습하는 것처럼 턴테이블로도 같은 곡을 계속해서 연습하면서 연주 방법이나 테크닉을 익히는 거죠. 바이올린을 연주할 때 활을 얼마나 길게 켜느냐, 얼마나 세게 켜느냐에 따라 소리의 강약이나 느낌이 달라지잖아요. LP판도 얼마나 빠르게, 얼마나 천천히, 또는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서 소리의 높낮이나 피치 조절이 제각각이거든요. 턴테이블리스트는 LP판으로 모든 걸 다 연주하는 거죠.
파운드 ― 음악을 컴퓨터로 만드는 것과 턴테이블로 만드는 것의 차이점은 뭔가요?
장비호 ― 컴퓨터 음악은 미리 입력되어 있는 악기 소스들을 불러와 작업을 하고, 턴테이블 음악은 LP판에 들어가 있는 소리들을 찾아 작업하는 거죠.
판돌 ― 턴테이블리즘은 기존 LP에 있는 만들어진 곡에서 소리를 뽑아내야 하니까 컴퓨터 음악보단 소스의 제약이 심해요. 그래서 사람들이 턴테이블로 음악을 만들어내는 걸 ‘미쳤다’고 하죠.
파운드 ― 제약된 사운드로 음악을 만드는데서 더 희열을 느끼는 건가요?
장비호 ― 제약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기존의 틀기 없는 영역이기 때문에 더 다양하고 새로운 걸 표현할 수 있는 거 아닌가요?
판돌 ― 조금 다른 즐거움이죠. 턴테이블로 곡을 만드는 건 손끝 하나로 달라져요. 손을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모든 게 달라지요. 심도 깊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아요. 같은 ‘도’라는 소리를 여러 방식으로 낼 수 있겠지만, 턴테이블은 하나의 악기가 되는 거고, 턴테이블리즘은 하나의 새로운 장르가 되는 거죠. 배틀 디제이라는 분야가 세계적으로 여전히 독보적인 이유는 이거에요. 다른 걸로 배틀 디제이의 퍼포먼스를 흉내 낼 수 없으니까요.
장비호 ― 턴테이블이 곧, 연주를 하는 악기, 그 자체인 거죠.
파운드 ― 한국에서 현재 활동하고 있는 턴테이블리스트는 얼마나 될까요?
판돌 ― 제가 아는 분들은 50명 미만이에요. 활발하게 활동하는 분들은 5명 내외?
파운드 ― 해외 씬은 상황이 다른가요?
장비호 ― 힙합의 전성기가 2000년도쯤이었다고 한다면 지금은 전성기를 지나 씬 자체가 많이 작아진 상황이에요. 수요가 줄다보니 턴테이블을 만드는 회사 자체가 문을 닫아버리는 상황이고. 살아남은 매니아들만이라도 이걸 지키고 키워나가자는 의지가 크죠.
판돌 ― 사실 부산에서 활동하면서 서울에 올라올 기회도 많았고, 한번 올라도 와봤는데 서울에 올라와보니 확실히 느낀 게 하나 있어요. 누가 조금만 잘해도 뭐라 하고, 못해도 뭐라 하고. 한마디로 ‘디스’가 너무 심해요.
장비호 ― 우리 문화 자체가 남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심하죠. 한창 그런 분위기가 심각했을 땐 어떤 디제이가 배틀 하고 있으면 다른 크루 디제이들이 와서 한 박자라도 놓치고 실수할까 팔짱 끼고 지켜보고 있었으니까.
판돌 ― 부산에서 올라온 디제이라고 저를 심하게 경계하는 분도 있더라구요. 저 같으면 새로운 사람 누구 하나라도 더 이 문화에 관심을 보이면 박수치고 좋아하겠는데. 서로 기술이나 정보들을 공유하기는커녕 같은 크루들 끼리끼리만 어울려 지내는 모습이 안타까웠어요. 부산에서 느끼지 못했던 걸 서울에서 많이 느꼈죠.

# 내 생각대로 사는 것이 곧 스트리트 문화
파운드 ― 요즘 부산의 스트리트 컬쳐 씬은 어때요?
판돌 ― 부산에서 배틀 디제이 씬이란 걸 만들어보려고 노력하다 애초에 부산엔 디제이 씬 자체가 없다는 걸 알게 됐어요. 클럽에서 활동하는 디제이들이나 배틀 디제이들을 만나 자연스럽게 뜻을 같이 하며 디제이 문화 자체의 기반을 만드는 게 우선이겠구나 했죠. 부산은 이제 겨우 디제이 씬이라는 게 있다는 걸 사람들이 알 정도가 된 것 같아요. 아직 멀었죠. 앞으로가 정말 중요하죠.
파운드 ― 씬이 형성되고 확장되는 게 피부로 느껴지나요?
판돌 ― 디제이 아카데미나 행사 쪽에서 사업적으로도 눈에 띄게 매출이 증가하고 있어요. 2000년, 부산에서 작은 파티로 시작했고, 군제대하고 2002년부터 본격적으로 스트리트 문화 관련 파티나 행사들을 치러왔는데,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정말 많이 나아진 거죠. 사실 초창기엔 페이도 제대로 안 받고 활동하고 그랬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페이를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좋은 행사나 파티를 만들면 그 문화가 잘 자리 잡힐 거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그걸 악용하는 회사들이 많이 생기는 거죠. 문화 자체가 공짜 문화가 되어가는 걸 느꼈어요.
파운드 ― 수익은 분명히 생기는데, 그 수익이 어디로 가는가, 이거죠?
판돌 ― 그렇죠. 정당한 페이를 받는 것도 중요해요.
장비호 ― 디제이를 하면서 ‘더 스쿨(The Skool)’ 아카데미에서 후배 양성도 하고, 파티를 직접 기획하고 진행하고 있어요. 여러 가지 일들을 한꺼번에 함으로써 생기는 문제점은 없나요?
판돌 ― 많죠. 돌아오는 피드백이 좋은 게 별로 없어요. 열정을 쏟고 노력해도 누군가는 경험만 하고 떠나버리고, 누군가는 뒤통수를 치기도 하고. 개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대형 자본으로 무장한 클럽엔 당해낼 수 없다는 사실에 회의감도 들었어요. 스트리트 문화를 사랑하는 매니아들을 위한 기획 파티들이 대형 클럽 씬에 밀리면서 오랜 시간 함께 일하던 친구들이 그쪽으로 가버리기도 하고, 배신도 많이 당했죠.
장비호 ― 전문성을 더욱 갖춰야겠다는 생각은 없나요? 디제이와 기획자로서 어느 하나를 꼭 포기해야 한다기보단, 누군가에게 맡기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은데….
판돌 ― 전문적인 능력을 갖춘 누군가에게 맡길 의향도 물론 있어요. 하지만 조금 노력하다 자본이 많은 곳으로 가려는 친구들이 너무 많아요.
장비호 ― 그런 경쟁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당연한 것 같아요. 그런 걸 배신이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그런 그들조차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전문성을 갖춘다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인 거죠. 체계적인 분업화나 전문화가 안 되어 있어서 생기는 문제의 이유를 대형클럽 씬으로 돌리는 건 어쩌면 핑계일 수도 있어요. 순수하게 스트리트 컬쳐 씬 자체를 발전시켜 나아가고 그 문화를 전파하고 싶은 의도를 가지고 있다면 배신한 친구가 잘 됨으로써 어찌됐든 씬 자체는 살짝 커진다는 걸 인정해야죠. 모든 게 자신 위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은 위험할 수도 있어요.
판돌 ― 바로 그런 점들에 부족한 제 자신을 발견하고 1년 정도 이 씬에서 떠나있던 적이 있어요. 그때 제가 느낀 게 바로 그런 거였어요. ‘이 문화를 사랑하고 좋아하고 즐기는 모습 그대로 사람들에게 보여준다면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다.’ 곡이 좋으면 장르나 스타일에 상관없이 1등 할 수 있는 것처럼. 2007년, ‘더 스쿨’ 부산점을 시작하면서 다시 긍정적인 마음으로 노력하기 시작했죠. 초심으로 돌아가 후배들도 가르치고, 개인 연습도 꾸준히 하다 보니 점점 일도 많아지고 바빠지더라구요. 자연스럽게 씬도 커지고 사람들의 관심도 많아지고. 내가 진심을 담아내면 통할 수 있다는 걸 느꼈어요.
파운드 ― 판돌씨가 사람들에게 알리고픈 스트리트 문화의 핵심은 뭔가요?
판돌 ― ‘사는 대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대로 사는 것.’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아가되 책임감을 가지는 거죠. 수많은 댄서들, MC들, 디제이들과 항상 함께 하는데, 이들 모두 자기가 하고 싶은 걸로 이십대를 채웠고, 삼십대의 현실적인 고민들을 함께 하면서 앞으로 조금씩 나아가고 있죠. 우리가 생각하는 건 하나에요. 열심히 하다보면 좋은 작품이 나올 거고, 그 작품으로서 인정을 받을 거고, 인정을 받게 되면 분명 현실적인 보상도 따라온다는 거죠.

# 여전히 세계 챔피언을 꿈꾸다
파운드 ― ‘Pioneer East Asia DJ Battle 2010’에서 아시아 챔피언이 된 이후, 이전과 달라진 점이 있나요?
판돌 ― 아시아 챔피언 되고 나서 더 열심히 하게 된 것 같아요. 챔피언이 됐어도 주변에서 아무 반응이 없어서. (웃음)
파운드 ― ‘Red Bull Thre3style 2012’ 본선에 진출했던데, 여기서 우승하면 한국 대표로 세계 대회에 나가는 거잖아요?
판돌 ― 네. 아직 구체적인 결승 일정은 나오지 않은 상태에요.
장비호 ― 이건 항상 궁금했던 건데, 항상 디제이 제자들과 함께 배틀에 출전하잖아요. 부담감은 없나요?
판돌 ― 전 오히려 왜 더 많은 한국 디제이들이 배틀에 출전하지 않는지 궁금해요. 말만 많아봐야 소용없잖아요. 직접 무대 위에 올라와서 보여달라 이거죠. 그리고 저에겐 언제나 붙들고 있을 무언가가 필요해요. 무언갈 항상 꾸준히 열심히 준비한다는 것, 대회를 준비하는 과정 그 자체가 저에겐 힘이 되죠.
파운드 ― 좋은 장비와 실력은 비례한다고 생각하세요?
판돌 ― 저도 처음엔 장비에 대한 강박관념이나 피해의식이 심했어요. ‘나도 저거 쓰면 되게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을 많이 했죠. 구하기 힘들고, 비싸서 못 사는 장비 대신 더 싼 걸 사서 연습하면서 말이죠. 근데 그게 오히려 도움이 되요. 말도 안 되는 장비로도 그 기술을 해내고 마니까.
장비호 ― 모래주머니 다리에 차고 산에 올라가는 거랑 비슷한 거죠. 차타고 다니는 사람들은 이해 못하겠지만.
파운드 ― 아카데미를 통해 후배 디제이들을 양성하는 건 문화 자체를 키우는 목적이기도 하겠죠?
판돌 ― 현실에 맞게끔 꿈을 키워나갈 수 있게 도와주고 싶어요. 아카데미를 찾는 원생의 90% 이상이 믹싱 하는 법을 배우러 와요. 클럽에서 일렉트로 하우스를 틀고 싶은 거죠. 멋있어서 디제이를 하고 싶은 학생들에게 디제이를 하나의 문화로서 올바르게 받아들이도록 교육하고 싶어요. 개성 있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성이나 애티튜드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니까요.
파운드 ― 디제잉은 언제까지 할 계획이에요? 세계 챔피언이 될 때까지?
판돌 ― ‘Red Bull Thre3style 2012’ 본선 준비부터 해야죠. 현재 운영하고 있는 델리 턴테이블(Deli Turntable, 판돌이 직접 운영하는 디제이 카페) 신 메뉴도 개발해야 하고. 파티도 꾸준히 기획하고 후배들이 플레이할 수 있는 기회도 더 마련해야 하고. 앨범을 내고, 식당을 차리고, 세계 챔피언이 되는 게 제 세 가지 꿈인데, 두 가지 꿈은 이뤄져 현재진행형이 되었고, 세계 챔피언이 되자는 꿈은 지금도 이루고 있는 중이네요. 사실… 이건 친한 친구들이나 동생들에게도 말 안한 건데, 스무 살 때부터 저 혼자 꿈꿔온 게 또 하나 있어요. 바로 ‘요리하는 디제이’요. 요리 쇼를 진행하면서 요리의 스토리에 어울리는 음악도 틀면서, 디제잉 기술도 보여주는 거예요. 요즘도 델리 턴테이블에서 요리도 하고, 턴테이블 연습도 하면서 먹고 자고 있는데 전 그게 너무 좋아요.
파운드 ― 고생스럽고 힘들어도 지금 행복하시죠?
판돌 ― 아이~ 좋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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